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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 외계인과 노인의 특별한 동행

by 리버네집 2025. 4. 22.

1. 고독한 노년, 뜻밖의 방문자와의 만남

펜실베이니아의 한적한 마을, 은퇴 후 조용히 살아가는 79세 노인 밀턴(벤 킹슬리)은 반복적인 일상과 치매 초기 증상 속에 점차 사회와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하루는 항상 같고, 이웃과의 대화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가족조차 무관심한 삶 속에서 그는 홀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뒷마당에 UFO가 불시착합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의사소통은 없지만 인간형 외계인 ‘줄스’가 타고 있었고, 밀턴은 줄스를 집 안에 들여 돌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두려움과 혼란이 컸지만, 줄스는 위협이 없는 조용한 존재였고, 이 둘은 조금씩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이웃인 샌디와 조이스 또한 줄스를 알게 되며 셋은 비밀을 공유하는 동료가 됩니다. 줄스는 지구에 불시착했으며 우주선을 고치기 위해 ‘고양이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들은 노인 셋은 고양이를 모으는 특별한 임무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숨겨둔 상처와 외로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샌디는 딸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고, 조이스는 과거를 잊지 못해 현재를 외면하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줄스는 대화를 하지 않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이들은 위로받기 시작합니다.

한편 정부는 줄스의 흔적을 감지하고 추적을 시작합니다. 노인들은 줄스를 보호하며 도망치는 것이 아닌, 그를 ‘보내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줄스는 마지막 순간 밀턴에게 우주선을 함께 타자고 제안하지만, 밀턴은 딸에게서 온 진심 어린 전화 한 통을 듣고 결국 지구에 남기로 합니다.

영화는 줄스가 우주로 떠난 뒤에도, 밀턴과 그의 이웃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장면, 다시 지구에 돌아온 듯한 줄스의 그림자가 등장하며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2. 외계인을 통해 삶을 되찾은 노인, 밀턴

밀턴은 세상과 단절된 노년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하루 세 번 시청회에 같은 민원을 제출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있으며, 사회에서도 가족에게서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습니다. 벤 킹슬리는 이 같은 외로움과 무기력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의 감정을 조심스레 끌어냅니다.

줄스와의 만남은 밀턴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그는 다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지고, 줄스에게 스스로 식사를 챙겨주며 돌보는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무언가를 ‘신경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의 삶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샌디는 외면하고 싶었던 가족과의 관계를 줄스라는 존재를 통해 직면하게 됩니다. 그녀는 줄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새 자기 내면의 감정을 정리해나갑니다. 해리엇 산섬 해리스는 강한 척하지만 여린 내면을 가진 중년 여성을 진정성 있게 연기합니다.

조이스는 죽은 고양이를 냉동실에 보관할 만큼 집착과 상실감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줄스의 존재는 그녀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조이스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와 마주하려는 변화를 겪습니다. 제인 커틴의 연기는 절제되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줄스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의 존재는 모든 인물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제이드 콴은 대사 없이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인간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합니다. 줄스는 외계인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이 세 인물은 줄스를 통해 비로소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게 됩니다. 밀턴은 딸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하고, 샌디는 가족에게 마음을 열며, 조이스는 다시 음악을 틉니다. 줄스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이들을 변화시킨 셈입니다.

 

3.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

《줄스》는 화려한 특수효과나 거대한 서사 없이도 깊은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입니다. 외계인과 노인의 만남이라는 기묘한 설정은 자칫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었지만, 영화는 이를 아주 진지하고도 따뜻하게 풀어냅니다.

이 작품은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노인은 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가? 그들은 정말 쓸모없는 존재인가?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줄스는 이 질문들에 조용한 방식으로 답합니다.

밀턴과 줄스, 그리고 이웃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서사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한 편의 소설처럼 흘러갑니다. 액션이나 긴장감 대신 인물들 간의 작은 변화와 선택들이 관객의 마음을 울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관계’라는 단어가 단순히 혈연이나 의무가 아닌, 선택과 감정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극의 온도를 부드럽게 유지시킵니다. 벤 킹슬리는 단연 돋보이며,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서사는 균형감 있게 짜여 있습니다. 제이드 콴은 대사 하나 없이도 ‘존재감’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줄스라는 상징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킵니다.

《줄스》는 크고 화려한 이야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에게, 아주 작은 만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별하지 않아 더욱 특별한 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관계 맺는 용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